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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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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5. 07 - 2021. 05. 30

작가 : 수연


아스라이 동이 트는 새벽이, 폭풍우 치던 밤에게.
-김맑음

헬레나 캠벨은 타인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는 녹색 광선의 전설을 좇아 여행을 떠난다. 켐벨과 일행은 태양이 질 때만 잠시 볼 수 있는 그 순간을 몇 번이나 실패한 끝에 마주한다. 하지만 헬레나도, 모험을 함께 했던 올리비에도 녹색 광선을 보지 못했다. 대신 그들 서로는 각자의 눈에서 검은 광채와 푸른 광채를 보았다. 그렇게 그들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전설을 찾는 일을 맡긴다. (1)

기나긴 역사 속에서 녹색 광선을 찾아간 이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하지만 헬레나와 올리비에는 다른 것을 찾았다. 그들이 발견한 검고 푸른 광채에는 녹색 광선이 갖고 있는 유구한 믿음의 축적이 없다. 수신과 발신 사이를 오가는 짤막한 깜빡임들만 있다. 앞면에는 그들의 검고 푸른 광채가, 뒷면에는 작은 이야기가 들어간 우편엽서처럼 말이다.

잠시 우편엽서에 대한 세르주 다네(Serge Daney)의 이야기를 빌려오자면, “우편엽서는 코드화된 메시지들, 혹은 우리가 이런저런 공간의 세계 속에 들어가 있음을 타인과 공유하기 위해 사용되어질 때 이상적인 수단”이다. 그는 엽서를 이미지로 여기면서 “현실 자체로부터 신비하게 등장한 일상적이고 격식 없”는 성격을 가진다고 본다. “사적 소통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모든 이들에게 가시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욕망하는 이들은 그 이상을 보기도 한다”며 엽서를 영화 자체의 메타포로 여긴다. (2)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봉투가 담긴 편지가 아닌 엽서 쓰기가 갖고 있는 조금 특별한 전달 과정이다. 한 개인이 전달하는 사적인 순간은 그 과정에서 다른 이의 손가락 사이에 종이 한 장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그 종이를 뒤집어보는 것은 누군가의 자유이겠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엽서를 뒤집기 전 앞면의 그림에서 잠시 멈출 것이다. 엽서의 앞면 그림들은 뒷면의 소박한 ‘순간’과 ‘감정’과 관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시 《부드러운 미래》는 잠시 멈춘 그 시점을 길게 늘어트린 것이다.

우편엽서와 회화를 나란히 놓아보자. 회화의 기원에 대한 몇 가지 전설 중, 연인이 부재하는 동안 그를 기억하기 위해서 벽에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를 모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비록 전설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과 ‘감정’은 회화의 기저에서 캔버스의 표면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등한시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회화사를 지탱하고 있는 이즘(ism)에 대한 반복된 믿음이 더 거대한 ‘전설’일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이곳에서는 그 역사 아래에서 묻혀있던 깜빡이는 소박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야기를 담은 감정의 씬(scene)은 기억되고, 그 가운데 얇은 쇼트(shot)들은 구분되고, 프레임(frame)은 씌워진다. 작가는 우리 모두가 하나쯤은 갖고 있는 영화같은 순간들을 얇고 부드럽게 프레이밍 시킨다. 프레이밍 된 회화들은 순간의 메타포가 된다. 앞면의 회화를 뒤집기 전, 길게 늘어트린 잠시 동안 멈추어 보자. 눈 앞에 보이는 것 뒤에 쓰여진 네러티브는 비단 발신자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P.S. 이곳의 엽서들은 아스라이 동이 트는 새벽이 폭풍우 치던 밤에게 보내는 것이다.
폭풍우 치던 밤들도 새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1. 쥘 베른, 『녹색광선』, 박아르마 역, frame/page, 2016, pp. 270-275.
2. 세르주 다네, 『영화가 보낸 그림 엽서』, 정략길 역, 이모션북스, 2013, pp. 96-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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