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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가득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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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9. 20 - 2019. 10. 19

작가 : 최황


언젠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한 연예인의 방 사진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좀 더 정확히 묘사하자면 방 사진이 아니라 그가 사진과 함께 올린 낯선 표현이 화제였다. 그는 자기 방을 촬영한 사진을 올리며 “내방 거실에 텔레비전이 생겨서 좋다”는 코멘트를 남겼는데, 내방 거실이라니, 이건 정말 난생 처음 접한 표현이었다. 나는 이미지를 보고도 도무지 머리 속에 ‘방 안에 있는 거실’이 그려지지 않았다. 3차원으로 표현할 수 없는 4차원 혹은 5차원의 공간 개념을 설명하는 어떤 문장 같았다.

작업을 하다 보면 수많은 한계와 마주치게 된다. 그중 작업 공간의 물리적 크기에 장악당하는 순간만큼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것이 없다. 물론 이건 산다는 것의 측면에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일상의 수많은 문제점 역시 좁은 공간의 좌표 위에 찍히며 드러난다. 어떤 경우, 좁은 공간은 인권과 직접 연결되기도 한다. 한국의 교도소는 1인당 2제곱미터의 면적조차 주어지지 않을 뿐만아니라 프라이버시가 기각된 상태의 공간을 제공한다. 실제로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며 헌법재판소가 “재소자 여러 명을 비좁은 구치소에 수용하는 것은 수형자의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좁아 터진 집들은 어떤가? 우리의 인격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며 제소해야 할 판이다.

인문학 열풍 수준을 넘어 심지어는 인문학 능력시험까지 등장한 한국에서 건축은 얼마만큼의 인간을 이해하며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부동산 거래와 건물주의 분양 효율만을 위해 노골적으로 좁은 집들을 모아둔 빌라들이 세워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동물원 동물들의 정형행동이 떠올랐다. 80-90년대, 한국에 동물원 건설이 유행처럼 불었을 때, 한국엔 동물의 습성을 이해해 동물원을 설계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한 명도 없었다. 넉넉한 활동 공간이 필요한 동물들을 좁은 공간에 가두면서 생기는 정신병적 행동들은 실존이 기각된 삶을 온 존재로 보여주는 비극의 장면이다.

내 좁은 방 역시 비극적이라 할 수 있다. 취향에 따른 내 일상을 조금만 굴려도 위태로운 상태의 공간이 된다.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적절한 순간에 쓸데없다고 판단되는 물건을 방 밖으로 폐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 한 권을 사면 책 한 권은 반드시 버려야 하는 ‘이미 가득찬 공간’이다. 이런 방에서 작업을 하려거든 반드시 물질의 총량을 조절해야 하는 법. 주먹 만한 크기의 뭔가를 만들면 그만한 크기의 물건을 버려야 한다. 이 방에서 작업을 계속 하니, 어느 순간엔 추억이 담긴 물건들도 정리해야 했다.

-2019년 8월 작업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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