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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ly F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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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4. 05 - 2019. 05. 02

작가 : 이일주


무경계의 시대. 이제는 예술의 경계가 없다고 말하는 시대. 건축, 회화, 조각, 영상, 무용, 연극, 퍼포먼스, 음악, 사운드, 소설, 시, 만화, 게임 등 모든 장르가 뒤섞인 시대. 혼성의 예술이, 한 줄로 소개하기 어려운 예술가가 범람하는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들의 주장이고, 혹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표현일 뿐이다. 여전히 예술의 경계에, 경계 밖에 위치한 작가들이 있다. 특히 일러스트레이션을 창작 기반으로 삼는 작가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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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각 예술인이 알퐁스 뮈샤와 헨리 다거를 좋아하고, 그림책 작가와 고유한 그림체를 가진 일러스트레이터를 존중하지만, 종종 “일러스트 같다”는 말은 폄훼의 언어로 쓰이곤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일러스트’란 대체 어떤 것이길래. 추측해보면, 이런 것이 아닐까.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지 않는다. 어떤 텍스트를 위해 복무하는 이미지 같다. 하나의 스타일로 기호화된 그림이다. 감상적이다. 개성이 없다. 이 중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스타일로 기호화된 그림이라는 점뿐인데, 이것은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 하나의 스타일로 기호화된 그림으로서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지향이 분명히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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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주의 작업이 하나의 스타일로 기호화된 그림이라는 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글을 시작했지만, 정작 이일주는 자신을 일러스트레이터로 정체화하지는 않는다. 일러스트레이션, 혹은 그와 유사한 형식을 창작 기반으로 삼고 있을 따름이다. 이일주는 A4지 혹은 비슷한 크기의 종이에 연필, 펜, 수채화를 섞어 자신만의 스타일로 기호화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그림책, 삽화, 광고의 이미지로 사용되지 않는다. 어떠한 텍스트에도 복무하지 않는다. 그림은 철저하게 작가의 생각, 상상, 추구하는 시각적 지향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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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인전 <DIGITALLY FALLEN>은 ‘세상의 부조리한 것들에 대한 대체 위안’을 테마로 하는 <H.O.>시리즈의 3번째 진(zine)에 수록된 원화 80여점으로 구성된다. 이일주는 <H.O.>시리즈를 통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 부조리, 사회악을 설정하고 그것을 처단하는 방식을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적 표현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특히 <H.O.3>는 스마트폰과 스마트폰 중독으로 인한 ‘디지털적 타락’을 주로 다룬다. <H.O.1>과 <H.O.2>가 자신의 생각과 상상으로부터 도출된 형상과 도형을 자르고, 조합하고, 이어붙이고, 생략하면서 단일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면, <H.O.3>는 이미지의 테두리, 즉 칸의 질감을 탐구하며, 칸과 칸이 구축하는 새로운 시공간과 만화적 시각구성에 대해 실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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